[베이징=뉴시스]박정규 특파원 = 중국의 외교·국제관계 싱크탱크인 차하얼학회의 한팡밍(韓方明) 회장은 한국이 대(對)중국 관계에서 제3자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되며 미·중과의 관계에서 신중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남북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의 조건을 충족시켜나가면서 개선을 시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근 악화된 중·일 관계의 경우 경색 국면이 상당히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 회장은 새해를 맞아 최근 뉴시스와 가진 서면 인터뷰를 통해 한·중 관계 및 동북아 정세 등에 대한 전망과 관련해 이같이 진단했다.
우선 해빙 모드를 맞고 있는 한·중 관계에 대해 기대감을 표하면서도 한국이 미·중 양국 사이에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회장은 "개인적인 생각에 중·한 관계의 미래 전망은 두 가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며 "먼저 한국이 중·미 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이룰 수 있는지 여부, 특히 역내와 대만 문제에 있다"고 언급했다.
대만 문제 등에 대해 한국이 편향적인 입장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어 "이는 중·한 양국이 서로 순치상의(脣齒相依·입술과 이처럼 밀접하게 서로 의지하는 관계)의 지리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고 한·미 양국이 동맹 관계에 있는 현실로 인한 것"이라며 "현 상황에서 한국은 중·미 양국과의 관계를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중 양국이 경제적으로 경쟁관계에 놓이게 된 만큼 경제·무역 분야의 새로운 성장 동력과 시장을 찾는 것이 양국 관계의 두 번째 관건이라고 제시했다.
한 회장은 "중·한 양국이 이들 두 과제에 잘 대처하고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면 중·한 관계의 앞날은 반드시 밝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제는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 어려워졌다는 시각에 대해서도 "한·미 동맹과 한·중 경제·무역 협력은 상충하지 않고 병행될 수 있다"며 반박했다.
그는 "중·한 관계는 독립적이고 제3자의 영향과 제약을 받지 않아야 한다"며 "여기에는 한·미 동맹과 중·북 동맹의 영향과 제약도 포함된다. 이는 사실상 한국의 독립적 주권 문제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달 초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에 대해서는 "양국 관계에 좋은 소식"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이번 방중의 논의 방향 역시 한·중 양국을 중심에 둬야 한다고 했다.
한 회장은 "한·미 동맹과 중·북 동맹 모두 중·한 관계 발전의 장애물이 돼서는 안 된다"며 "중·한 관계는 완전히 독립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양국 경제·무역의 새 성장 동력과 시장을 찾고 문화 협력 등을 논의하는 것도 이번 방중을 통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한한령(限韓令·한류금지령)'이 아직 이어지고 있다는 한국의 시각과 관련해서는 중국의 국가 실정을 한국이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했다.
한 회장은 "중국의 국가 실정에 비춰볼 때 자체적인 법률, 규정, 사회적 환경, 문화적 전통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외국 문화·예술 작품이 중국에 진출할 때 우선 이 같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정치적으로 문제가 없어야 하고 중국의 법률, 역사관, 사회·문화적 전통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원칙을 매우 중시하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양국 간 문화 교류에서 교류 내용의 기본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도 조언했다.
남북 관계와 관련해서는 중국의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시각을 내비쳤다.
중국이 최근 들어 '한반도 비핵화'라는 문구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에 대해 한 회장은 "개인적으로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입장을 정말로 바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을 포함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함께 결정한 내용이자 여전히 국제법적 효력도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입장을 포기할 경우 되레 한국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한 회장은 "이것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절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중국 정치·사회의 표현적 특징을 들기도 했다.
한 회장은 "(중국 사회에서는)종종 '내가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찬성하거나 동의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별개의 문제다!'라는 태도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명시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포기했다는 뜻으로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남북 관계 개선 노력과 관련해서는 "주로 한국이 일방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현재 남북 관계의 적대적인 성격과 현실을 감안할 때 남북 관계 개선은 반드시 조건부여야 한다"며 "무조건적으로 양자 관계를 개선할 수는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충고했다.
내년 미·중 관계에 대해서는 관세보다는 다른 문제가 대두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 회장은 "관세 문제가 내년 중·미 간의 '핫 이슈'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중·미 간에 다른 쟁점이 등장할지 여부에 대해 아무도 (가능성이)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이어 "중국 정부의 최대 관심사는 대만 문제,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문제를 포함한 영토 문제"라며 "만약 중·미 간에 중국 영토를 둘러싼 갈등과 충돌이 발생한다면 이는 양국 관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문제와 충돌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한반도 및 북핵 문제가 부각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에 대해서는 미국의 북핵 문제 대응, 한국에 대해서는 핵 확산 문제와 한·미 동맹의 확대 등이 중국의 관심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꼽았다.
그러면서 "한·미 동맹 확산의 경우 주로 북한을 겨냥하는 것에서 중국을 겨냥하는 것으로 (범위가)확대되는 것(이 우려될 수 있다)"이라며 "중국이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순치상의의 관계임을 감안할 때 중국은 이를 외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중·일 관계에 대해서는 장기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 회장은 "현재로서는 다카이치 정부가 일본의 국가 우경화, 혹은 소위 정상화라는 문제에서 공개적으로 후퇴할 가능성은 낮다"며 "개인적으로 중·일 관계가 상당히 장시간 정치·경제 모두 냉각 상태를 유지할 것이고 심지어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관측했다.
아울러 "중·일 관계가 봉합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다카이치 정부가 적어도 일본의 우경화 혹은 정상화 문제에 있어 중국의 국가 이익을 돌파구로 삼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라며 "특히 대만과 댜오위다오 문제를 현 일본 정부의 지지율 확대와 군사산업 발전의 구실이나 발판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는 기본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한 회장은 차하얼학회가 향후 한국과 공공외교에서 역할을 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차하얼학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일련의 행동을 통해 공공외교 분야에서 중국과 외국 간 우호적 공존을 촉진하는 것"이라며 "한국 각계와 대화와 교류를 전개하고 상호 이해를 강화하면서 공식 정책 결정을 위한 조언과 제안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의 외교·국제관계 싱크탱크인 차하얼학회는 중국공산당의 지원을 받는 외교단체로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외사위원회 부주임(차관급)을 역임한 한 회장이 2009년 설립했다.
주로 동북아 문제와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한국 정치인들과도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