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조, '음 채색' 마법사…채도·명도·색상 미학적 조화
가수 이광조(74)는 '음(音) 채색'의 마법사다.
성량의 채도를 낮추는 대신 발라드 명도를 높이며, 결국 노래라는 색상을 뚜렷하게 한다.
일흔 살이 넘어서도 그처럼 깨끗한 미성(美聲)으로 노래를 부르는 이를 보지 못했다.
2년 만인 최근 발매한 새 앨범 '글로리 데이즈(Glory Days)'가 이를 방증한다.
이번 음반은 신곡 2곡과 기존 대표곡의 재녹음·재해석 트랙을 포함했는데, 전곡을 올해 기준의 보컬로 다시 녹음했다.
기존 편곡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음향적 균형과 질감을 현대적으로 조정하는 프로덕션이 가능했던 까닭은, 이광조의 보컬 매력이 여전해서다.
바이닐(LP)로도 발매된 이번 음반의 A면은 2016년 발표곡 '참 좋다'의 재녹음 버전으로 시작한다.
이후 신곡 '그리워, 그리워, 그리워'(작곡 김한년), '사랑이란 말이야'(작곡 박호명)가 이어진다.
또한 1939년 발표된 이난영의 '다방의 푸른 꿈', 김창완의 '청춘'이 현대적인 어쿠스틱 사운드로 재해석됐다.
B면에는 박단마의 1937년 발표곡을 재구성한 '나는 60살이에요', 남궁옥분의 히트곡 '재회', 1990년 발표곡 '빈 가슴 하나로', 삼바 리듬 기반의 '즐거운 인생' 그리고 대표곡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등의 트랙이 배치됐다.
홍대 미대 출신인 이광조는 이들 곡으로 순정하면서도 섹시한 노래의 미학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의 전성기를 동시대에 지켜 본 사람들이 특권을 누린 것처럼 여겨지지만, 여전히 '영광의 날들'을 유지하고 있는 이광조를 보고 있노라면 그 특권은 젊은 세대도 공유 중이다.
특히 지금도 고유의 섹시함을 갖고 있는 그는 여든 살이 넘어 레이디 가가 같은 젊은 가수와 협업한 미국 재즈 가수 토니 베넷의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국내 몇 안 되는 가수다.
게다가 올해는 이광조가 데뷔 50주년을 맞는 해다.
1976년 '나들이로' 데뷔한 그는 '세월 가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즐거운 인생' 등의 히트곡을 내며 국내 팝발라드 계보 한 축을 책임졌다.
1978년 콘서트를 하던 중 이정선을 만나 '해바라기'에 합류, 이 팀의 2집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솔로 작업을 병행해 '나들이'라는 히트곡도 냈다.
이정선, 엄인호와 함께 트리오 '풍선'으로도 활동했다.
1985년 발표한 3집으로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 앨범에 수록된 '사랑은 이제 그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등이 크게 히트했다.
'이광조와 보통사람들'이란 밴드로도 활동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신곡을 내고 있다.
이번 음반은 기타리스트 함춘호가 참여했다.
두 뮤지션이 수십 년간 쌓아온 협업 경험과 어쿠스틱 기반의 사운드를 중심으로 제작했다.
이광조와 함춘호의 첫 협업은 1979년 라이브 음악 중심지였던 서울 무교동이 배경.
당시 19세였던 함춘호는 록그룹 '들국화' 전인권을 통해 이광조의 초기 음반을 접했다.
이후 라이브 카페에서 실제로 이광조와 만나며 인연이 이어졌다.
두 사람은 1980년대 이후 국내외 활동을 함께하며 포크, 발라드 영역에서 오랜 기간 시너지를 냈다.
이번 새 앨범은 2022년 발표된 '미학적인 어쿠스틱의 향연' 후속작이다.
전작이 어쿠스틱 편성에 기반한 미니멀한 사운드를 특징으로 삼았다면, 이번 음반은 신곡 2곡과 기존 대표곡의 재녹음·재해석 트랙을 포함한 아카이브형 구성이다.
다음은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이광조와 만나 나눈 일문일답.
-미성이 여전하세요.
어떻게 여전히 음을 그렇게 매끈하게 내시나요?"사실 우리 세대가 걱정을 많이 해요. 쿠세(고치기 힘든 나쁜 버릇)가 생기면 어떡하나… 최대한 느낌을 갖고 노래를 하려고 하죠. 연습을 할 줄 몰라요. '그냥 이렇게 하면 이런 식의 느낌이 가겠구나…' 부르죠. 다행히 지금 말소리를 들어도 나이 든 사람 같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선생님의 귀환은 우리 음악계 다양성에 보탬이 돼 반갑습니다.
이 연세에 여전히 활동하시는 것이 동년배 팬들에게 자극도 되고요.
"그런데 사실은 활동할 때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저희들은 콘서트를 굉장히 많이 했던 가수들인데 요새는 콘서트를 할 수가 없어요. 현재 제일 불안한 점이죠. 사람들은 들어보지 않고 '저 사람 늙었으니까 아마 못할 거야' 식으로 생각하는 편견도 갖고 있죠. 큰 공연장이 아니더라도, 200~300석짜리에서 계속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실버 세대가 점점 많아지는데, 실버 세대를 위한 공연은 여전히 없네요.
"이 나이에 우리가 섹시하게 공연하면, 얼마나 멋있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세상이 그걸 이해를 안 해주려고 하니까… 그게 힘든 부분이죠."-선생님은 정말 매력이 특별하셨던 게 발라드를 부르시면서도, 섹시하셨어요.
사실 대중음악의 주요 속성 중 하나가 성적인 매력이잖아요.
여전히 그런 매력을 갖고 계셔서 놀랐습니다.
"아니에요 이제 많이 늙었어요. 하지만 중장년층에도 그런 매력을 즐기는 게 필요하거든요. 현재 그런 분위기가 거세당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인들은 그런 걸 표현할 욕구조차 없다고 보는 거죠. 사람들이 중장년층을 계속 고루하게 만드는 거 같아요. 우리가 놀 수 있는 무대만 만들어 준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신곡 '그리워, 그리워, 그리워', '사랑이란 말이야'는 '이광조가 현재 진행형'이다라는 걸 보여줍니다.
"함춘호 씨 기타 반주로만 노래한 기존곡들과 다른 느낌을 줘야 하니까 두 작곡가랑 상의를 많이 했어요. 오케스트라가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제작비 제약이 있으니까 (신시사이저로) 찍어서 냈죠."-선생님 목소리 자체가 결이 풍성한 오케스트라니까 괜찮습니다.
함춘호 선생님과 작업은 어떠셨습니까?"그 친구하고는 벌써 40년이 넘었어요. 기타, 노래만 들어가는 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인데요. 제가 기댈 데가 없잖아요. 보통 베이스에 기대야 하는데, 통기타 하나만 가지고 노래를 할 때는 조금 더 리드미컬하고 보폭이 좀 더 커야 하죠. 그런데 춘호 씨랑 하니 서로 눈만 봐도 교감이 되니까 좋더라고요."-과거 '슬픔까지도 섹시하게 만드는 가수'라는 별명도 얻으셨는데, 동시에 강단도 갖고 계시고요.
이 양면성도 선생님 매력입니다.
특히 선생님 한창 활동할 시기에 아티스트가 강단 있게 하기가 더 쉽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요.
"굉장히 어려웠어요. 혼자서 싸웠죠. '나들이'가 76년에 나왔고, '오늘 같은 밤'이 78년에 나왔는데 방송에서 안 틀어줬어요. (방송 관계자들과) 골프도 같이 치러 다녀야 되고 술도 같이 마셔야 되는데 그런 걸 몰랐으니까요. '생겨 먹은 게 고고한 학처럼 살아야 된다'는 말도 들었고요. 하하."-편견일 수도 있지만 미대를 나오셔서 학처럼 미적 감각도 뛰어나셨습니다.
패션은 물론 무대 매너적인 측면에서도요.
당시 서울대 미대 출신 포크 가수들은 많아지만 홍대 출신 발라드 가수는 정말 드물었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서울대 미대, 홍대 미대가 1년에 한 번 씩 운동회 교류를 했어요. 당시 서울대가 태릉에 있을 텐데 다 같이 모여서 노래를 하는데 서울대에선 학생 가수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없으니까… 그 상황에서 제가 어쩌다 나갔어요. 이전까지는 제가 공개적으로 노래를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노래를 하고 나니까 '너무 잘하네'라고 하더라고요. '목소리가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말도 들었고요. 이후 다른 곳에서 저를 찾아왔어요. 가수를 하라면서요."-76년 '나들이'로 데뷔하신 과정을 들려주신다면요.
"당시엔 투 트랙으로 녹음을 했잖아요. 반주 하나, 노래 하나. 잘 나가다가 배고파져서 힘이 떨어지면 다시 노래해야 됐어요. 그래서 무지하게 떨면서 노래했어요."-미술 쪽으로 계속 나가셨어도 크게 이름을 떨치셨을 거 같아요.
"대학교 때 미전(미술대전)에서 입상을 했어요. 그러다가 이렇게 온 거죠."-음악의 어떤 점이 좋았습니까?"음악이 좋다기 보다… 사실은 어릴 때부터 음악 듣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네 살부터 음악을 듣고 자랐죠. 외국 음반을 많이 갖고 있었어요. 어릴 때 용산에 살았거든요. 당시에 미제판을 많이 구할 수 있었습니다. 미군 부대 근처였으니까요. 듣는 것만큼 좋은 공부가 없어요. 들으면서 많이 습득을 했어요."-선생님의 가창이 대단한 이유 중 또 다른 하나가 원곡 가수가 있더라도 선생님이 부르시면 선생님 노래가 됩니다.
이번 앨범에 실린 '나는 60살이에요'(원곡은 1992년 박단마 '나는 17살이에요')이 대표적이죠.
60세라고 하셨지만 정말 감성은 원곡의 17세예요.
젊은 여성 보컬에 절대로 뒤지지 않는 보컬 끼가 넘쳐서 깜짝 놀랐어요.
외람될 수 있지만 보컬이 야들야들하게 느껴졌다고 할까요?"저도 제일 좋아하는 노래예요. 사람들이 '너 이 나이에 어떻게 이렇게 뻔뻔하게 노래하냐'고 하다라고요. 하하."-데뷔 50주년을 맞으셨습니다.
"겁나요. 요즘은 끝을 잘 맺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소리가 안 나와서 힘이 떨어져 있는데 노래를 하면 안 좋을 것 같고…"-박수 칠 때 떠나라 같은…"그렇죠. 그 때 떠나야 하는데…"-그런데 지금과 같으면 10년은 더 노래하셔도 될 거 같아요.
여전히 미중년이시고요.
해보고 싶으신 무대가 있나요?"빅밴드 무대, 녹음은 정말 해보고 싶어요."-한 평론가는 1985년을 국내 발라드 기점으로 잡더라고요.
비슷한 시기에 거물 뮤지션들이 잇따라 발라드를 냈고 선생님도 그 중 한 분이시죠.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발라드는 무엇인가요?"노래 기교는 쉽게 나올 수 있지만 깊이는 쉽게 나오지 않거든요. 자기 공부를 그래서 굉장히 많이 해야 해요. 그런데 요즘은 깊이를 쌓기보다 먼저 보여주기 위해서 나가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요즘 같은 오디션이면, 전 일찍 떨어졌을 거예요. 우선 질러야 하잖아요. 그게 제겐 안 맞아요."-이광조는 저평가된 가수입니다.
"옛날에 녹음한 '세월 가면'을 들으면 '얘 미쳤구나'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 기가 막히게 노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제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해요. 그냥 이렇게 살아야지요 뭐. 하하."